전하진의 20대 총선일기 #1)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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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19대 총선에 출마하며 정치를 시작한 나는 ‘전하진의 정치초짜일기’를 쓰기 시작했었다.

정확히 2012년 3월 18일 공천발표가 난 그날부터 하루하루 소회를 담았다. 이제 4년이 지난 지금 일정상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오늘부터 20대 총선에 대한 소회를 일기형식으로 남기려 한다.

정치를 시작하고 처음겪은 예비선거…
대략 2월부터 예비후보등록을 시작했으니 2개월 정도 이미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아마 처음 총선에 나왔을 때 보다 글을 쓸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사실 겪어보니 이념적 생각이 다른 상대후보와의 경쟁보다 당내 경선에 임하는 것이 훨씬 어렵고 또 무의미하다는 생각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웠는지 모른다.

100%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당대표의 주장은 그 뜻에는 공감하나, 실천과정은 매우 미흡했음이 여실히 드러난 공천과정이었다.

공천은 캐스팅이다. 각 정당이 향후 4년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수행할 후보를 엄선하여 선거에 내 놓는 작업이다.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후보가 자리보다 많은 상황에서 어떤 후보를 내세울 것인가는 바로 그 당의 비전을 표현하는 거대한 이벤트다. 다시 말해 제작발표를 하는 감독이 작품의 성격에 맞는 출연 배우들을 함께 발표함으로서 작품의 기대를 한층 높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번 공천은 그런 비전은 생략된 채 오로지 상향식 공천이라는 절차를 지켜내느라 작품이 뭔지 배우가 누군지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말았다. 공천이 마무리된 지금 과연 우리는 어떤 비전을 위해 어떤 후보들을 내 세웠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아무리 훌륭한 배우라도 작품의 성격에 맞지 않으면 캐스팅되지 않는다. 중앙당이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의 현실은 바로 당이 국민들에게 선택받을 후보들을 엄선하여 선거에 내 놔야 한다. 그런데 그 작업을 여론조사에 맡기고 여론조사에서 이긴사람을 무조건 공천을 한다? 이것은 당의 역할을 방기하는 일이다.

만에하나 당이 선택하기 애매한 경우 여론조사라는 방법이 동원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참고용이어야 한다. 김무성 대표의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린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먼저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걸맞는 분들을 캐스팅해서 국회를 구성하겠노라고 먼저 선언을 했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는 인선 작업을 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4차산업혁명 시기이니 국회가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 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런 국회를 만들기 위해 중앙당이 정교하게 인재영입에 나서 철저한 검증과정과 국민들의 선택과정을 거쳐 후보를 결정했다면 국민들이 훨씬 쉽게 당의 미래비전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대 총선은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는 어떤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는 비전 제시는 없고, 기준이 애매모호하게 공천이 이루어졌다.

훌륭한 작품을 위한 캐스팅은 원천 봉쇄된 상태에서 해 보겠다는 사람들 중에서만 선택을 해야 하는 족쇄를 스스로 채운 꼴이 되고 말았다.

기준이 여론조사이다 보니 인지도가 있는 후보들은 작품의 성격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본인이 캐스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마추어리즘도 공천과정을 혼란스럽게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삼고초려 모셔와야 할 스타급 배우의 캐스팅은 아예 원천봉쇄되고 말았다. 19대 때 당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도 여론조사에서 밀려 낙천한 경우도 있다.

여론조사의 경우도 오차범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학술적으로 무의미한 숫자로 기계적 공천을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 공천과정을 겪으면서 느낀 소회는 공천은 당의 미래비전에 맞는 지극히 주관적인 캐스팅이어야 한다고 느꼈다. 다만 그것이 주요 권력자들의 사리사욕에 의한 사천을 방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당의 결정에 승복하는 후보들을 보면서 그들은 진정 프로들이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은 공천은 캐스팅임을 아는 것이다. 자신이 쓰일 때를 아는 것이다.

아무튼 정치경험이 짧은지라 이같은 경선과정을 처음 경험하며 복잡한 소회를 몇 자 적는다.

이 모든 고통도 부활의 기쁨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넘기려 한다. 제발 자리를 놓고 사생결단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정치를 기대해 보자. 늘 낮은 곳으로 임하셨던 예수님의 엄청난 힘은 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음을 되새기는 부활절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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